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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괴물급.png

대리 여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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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ル エズラ オスティン / Al Ezra Aus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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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투영하는

​앨 에즈라 오스틴

괴물급 대리 여행가

* 대리(代理) -  남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함. 또는 그런 사람.

 

 

앨은 시간이 없어서, 몸이 불편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 대신에 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지의 사진이나 기념품. 그리고 제 능력을 이용해 당시의 기억과 장면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일을 무보수로 하고 있습니다.

 

여행 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데다, 이제 겨우 십여 명의 의뢰를 들어주었을 뿐이었지만. 상대의 성격과 관심사나 요구를 파악해서 '이 사람이라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를 고려해 다녀오는 세심함 덕에 앨의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각광받았습니다. 능력으로 보여주는 기억에 그 자신의 감상이나 쓸데없는 행동이 담겨 있지 않아 기억을 받는 상대로 하여금 오롯이 자신만의 감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조심성과 임무 수행능력 또한 의뢰인의 만족을 채워주는 요인이었습니다.

 

 

" 기억이라는 게, 신기하더라구요. 분명 가본 적 없는 곳인데- 기억을 본 것만으로도 제가 거기에 갔다 온 기분이 들어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걸요!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

 

 

바쁜 생활 속에 단 한 사람 만을 위한 여행, 그만을 위한 기억. 막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정도였으나 앨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한 번쯤 그에게 의뢰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능력의 활용방법과 봉사정신, 세심함, 특이성, 결정적으로 상대의 높은 만족도 등을 하나의 가능성과 재능으로 인정받아, 그는 '대리 여행가'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눈에 투영하는

능력을 쓰는 동안 접촉하고 있는 상대에게 본인의 기억과 당시의 감정을 보여주거나, 반대로 상대의 것을 자신이 보게 됩니다. 감정의 경우 강렬한 감정이 아니면 대충 이런 느낌을 받았나 보다, 정도로 어렴풋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보여주는 쪽에서 상대에게 이러이러한 기억, 예를 들어 '어제 구경한 해돋이' 같이 그때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고 있을 때만 보여줄 수 있으며, 기억에 포함되는 당사자의 감정, 생각, 기억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기억을 잘라서 여러 번 보여준다면 모를까. 기억 일부분을 가리고 골라서 보여주는 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능력을 사용하면 기억을 보여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가벼운 두통이 동반됩니다. 보여주는 기억이 길어질수록. 또 기억에 담긴 생각이나 감정 같은 정보량이 많을수록 두통이 거세지며, 일정 정도를 지나면 심각한 멀미와 함께 공유가 끊어집니다. 앨은 장시간에 걸쳐 천천히, 여행의 기억을 여러 번 끊어서 전달해주는 식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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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품

낡은 로켓 목걸이

 

: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의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남자 쪽은 앨과 상당히 닮아서 동일인물로 보이지만, 사진의 색 바랜 정도를 보면 최소 십 년은 넘은 사진으로 보입니다. 뒷면에 각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Albert & Maria'

Help, I lost myself again

도와줘, 나는 또 나 자신을 잃었어

But I remember you

하지만 난 너를 기억해

- Billie Eilish, Six Feet Under

 

 

우유부단한

" 아, 나는... ...어느 쪽이라도 괜찮단다."

 

앨은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어른스럽고 침착하게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가만 보면 목소리를 내기 전에 몇 번이나 망설였으며. 또 힘겹게 입을 연 뒤에도 확신이 안 서는지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상처받을까. 혹은 나를 미워할까. 지레 겁먹고 움츠러드는 일이 일사이었습니다. 차라리 한 방향으로 확실히 결정해버린다면 편할 텐데. 항상 그러질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책임감

"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니. "

 

하지만 그런 우유부단한 성격임에도 앨이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는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의 어머니와 관한 일이었습니다.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필요한 일이나 집안에서 무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버거워하면서도 다 자신이 먼저 해결해두려고 애썼습니다. 안 좋은 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익숙하니 집 밖에서도 나이가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나서고는 합니다.

 

그러나 전부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엔 어색한 감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선의나 정의감으로 베푸는 행동이라기에는 앨의 표정은 불편했고, 행동하는 와중에도 썩 상황을 반가워하지 않아 했습니다. 그건 떠밀려서 행동하는 것처럼, 일종의 책임감 같았습니다.

 

 

 

에고(ego)?, 모순적인

" 내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남 대신 나서고 싶진 않은데... "

 

앨은 유독 자신의 정체성에 신경을 쓰는 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남 대신 무언가를 하는 걸 꺼리곤 하지만, 앨은 힘들거나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닌. 별것 아닌 일이라도 남이 할 일을 대신한다는 것 자체를 꺼리고는 했습니다.

 

타인의 일을 대신하거나,남과 동일시하거나 혼동하는 일이 생기면 미약하게나마 숨기지 못하는 실망이나 거부감이 보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타인의 웃음을 볼 수 있다면, 같은 사소한 이유로 그런 제 감정을 외면하고, 얼마나 실망스러운 상황이라도 잘 거절하지는 않는 모순적인 면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불편함보다는 그쪽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자주 남의 결정에 휩쓸리기 때문에 더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모순적인 건 그렇게 집착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크게 자신만의 무언가가 없다는 일이었습니다.

 

 

+) 에고그램

: 묘하게 다정하면서도 속마음은 비뚤어진 타입

http://egogramtest.kr/result.php?type=BACCA

 

이 타입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면 응석받이에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칭찬 받는 일은 무턱대고 기뻐하는 성격입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눈치나 행동을 살피고 전전긍긍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타입은 사려분별이 엉망이고 천성이 어두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

✉ 대리 (代理) ✉

 

말투, 음식이나 옷 취향, 필체, 머리 스타일 등등. 거의 전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많은 것을 남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벌써 십여 년도 전에 죽은 사람의 흉내를.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적도 없지만,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사진이나, 일기, 문자, 그리고 어머니가 전해줬던 말과 기억을 참고 해서 그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항상 들고 다니는 일기장도 아버지의 것으로 평소에도 자주 들춰보며 말투나 성격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라고 물으면, 그래야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니까, 라는 이유 외에는 대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또 이런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이런 행동이 아니면 어머니는 매일이 우울해 보이셨으니까요. 자신 덕에 어머니가 웃는 걸 보는 게 정말 좋았던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미묘한 책임감이었습니다.

 

 

 

✉ 여행 ✉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몸이 아픈 어머니 대신 여행을 다니며 사진 따위를 전해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일은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하던 일이었습니다.

 

정작 그 자신이 여행을 좋아했던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여행도 다른 사람을 위한 여행도, 상대가 좋아해 주기를. 그래서 자신을 사랑해주거나, 날 보고 웃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이나 유명한 관광지 앞에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할까 싶은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능력으로 자신의 기억을 건네줄 때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이 담기면 안 된다고 각별히 조심하다 보니, 여행에 신경 쓸 정신은 남지 않았기도 합니다.

 

앨은 미리 짜둔 계획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셔터를 누를 뿐. 그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아름답거나 감명 깊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때문에 가끔 자신에게 어느 여행지가 가장 좋았냐는 식의 질문이 들어오면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전부 좋았다고만 얘기합니다.

 

 

 

✉ 거부감 ✉

 

제 얼굴이 담긴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것이나 유령을 싫어하는 것도, 자신이 아버지의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만큼 굳이 사진으로 이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또 사진이든 거울이든 그 모습이나 지금의 상태를 제가 다시금 확인하고 되새기는 것도 싫었습니다.

 

유령의 경우는, 그도 그럴게. 유령이나 사후세계가 진짜로 있어서 죽은 아버지가 지금의 앨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가 보기에 자신이 얼마나 웃기고 같잖겠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 칭호 ✉

 

몇 안 되는 아버지와 다른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집착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칭호 같은. 제게 일어난 기이한 현상의 정체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처음 눈의 능력과 초괴물급에 대한 걸 알았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칭호에마저도 대리 여행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왜인지. 어째서 그런 이름이 되었는지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냥 여행가 같은 이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앨은 자신의 재능 이름을 꺼립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삶이 하나의 여행' 이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은 말 그대로 대리 여행을 떠나고 있는 중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며 기뻐했던 이 재능도, 그저 좋아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이 자신의 칭호나 재능에 관해서 얘기하는 일이 생기면, 앨은 최대한 '대리 여행'이라는 말은 피해서 대답하려고 애씁니다.

 

 

 

✉ 기억 ✉

 

앨버트가 아닌 앨에게만 있는 것이니 처음 눈의 능력을 얻었을 때는 언제든지 펑펑 쓸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여행의 기억을 전해주는 일이 아니면 절대 능력을 쓰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앨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담긴 기억을 전해주는 것을, 그리고 상대에게서 그런 기억을 받는 것을 극히 꺼리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두 사람의 감상이나 기억이 존재한다면 그건 온전히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고 개개인에 신경 쓰는 앨에게 남의 기억이나 감정은 독이었습니다. 자신이라면 전혀 몰라야할 어머니의 옛날 얘기나, 앨버트와의 추억에 무심결에 웃으며 '그랬었지', 라 생각하고 스스로 놀란 뒤로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는 일뿐 아니라 남의 깊은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나,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최대한 피하고 있습니다.

 

 

 

✉ Theme song ✉

 

Thought I found a way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But you never go away

하지만 당신이 절대 떠나지 않을 테니

So I guess I gotta stay now

나도 여기에 남아있어야겠지

 

[ Billie Eilish & Khalid - lovely ]

https://youtu.be/V1Pl8CzNzCw

과거

" 이게 당신이 사랑하는 모습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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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 생각을 할 때 당신도 나를 생각할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경린, 나비

 

 

01.

앨버트와 마리아.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며 많은 곳을 여행하고, 점점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세상에 많은 아름다운 곳을 보고 싶어했고, 앨버트는 그런 마리아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약했던 마리아의 건강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리아는 앨버트에게 자기 대신 많은 곳을 여행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나 때문에 너까지 집에 묶이게 되는 건 싫다고 말하면서요.

 

 

 

02.

앨버트는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자신이 보았던 아름답고 즐거웠던 것들을 꼭 얘기해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외로움을 앨버트의 이야기로 채워나갔습니다. 오래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 앨버트는 돌아올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전해주는 여행의 이야기. 마리아는 앨버트를 기다리는 이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03.

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앨버트는 기차사고에 휘말려 즉사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마리아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아,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앨버트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 하며 한참을 울고 슬퍼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사이로 아들이 태어나고, 그가 점점 클 때까지도 앨버트의 빈자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04.

그렇게 또 몇 년. 어느 날 마리아의 눈에 제 아들이 보였습니다. 아버지, 앨버트와 같은 머리카락색과 눈 색. 클수록 점점 닮아가는 이목구비에 마리아는 번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매여있던 시선이 아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건 마치... 앨버트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아니, 돌아온겁니다.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05.

그날부터 마리아는 드문드문 미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다소나마 앨버트가 죽기 전이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마리아는 정성스레 아이를 돌봤고, 아이에게 과거 둘 사이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래 자식을 낳으려면 지어주려던 에즈라 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본 이상 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앨버트, 나의 앨. 어째선지 앨버트라고 이름을 지어주는 것만큼은 친척들이 말렸기에, 쭉 불러왔던 애칭으로 그의 이름을 바꿔주었습니다. 친척들과 마을 이웃은 마리아의 행동을 걱정하고 불안해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06.

아들은, 앨은. 늘 우울해 보이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온 사랑을 쏟아주자 어색해했었으나. 그 이상으로 기뻐했습니다. 마리아는 사진이나 편지 같은 걸 들어 보이며 앨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 날들은 즐거웠지만, 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자신을 쳐다보면서 이상하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07.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요. 화내는 모습이나 슬픈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반사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앨은 본능적으로 어머니가 싫어하는 게 '그 사람'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갔습니다.

 

알아차린 다음은 쉬웠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어. 조금 더 웃어줬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그 사람의 흉내를 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앨은 저 사람이 누군지 알기도 전에, 마리아가 보여주는 사진 속의 사람을 따라 했습니다. 그로서 살아가면 어머니도, 자신도 행복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행동을 고치고, 좋아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점점 바꿔나갔습니다. 집 안에 잔뜩 남아있는 '그'의 모습을 따라 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08.

어머니의 얘기 속에서 그 사람은 언제나 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것들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앨은 그것도 따라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멀지 않은 공원에서 꽃을 꺾어다 어머니에게 선물해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앨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앨은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09.

그 뒤로는 그런 생활이 다시 몇 년인가. 앨은 친척의 도움을 받아 가깝고 먼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어머니께 얘기해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앨을 정말, 정말 사랑해주었지만. 그거면 괜찮다고 다짐했던 게 우습게도, 앨은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괜찮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앨버트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이 앨의 모습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놀라거나, 이상하게 쳐다보던 일이 생각나면. 또 어머니가 눈앞의 자신이 아닌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는 듯한 시선을 보내면 당장에라도 죽은 사람의 흉내를 그만두고 싶어졌습니다. 앨은 사랑받고 있었지만. 앨 에즈라 오스틴은, 사랑받고 있는 걸까요?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열 네 살쯤의 여름, 8월 15일. 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내에서 이번에야말로 죄송했다고, 난 앨버트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마리아의 반응이 잘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조금 실망하고 마시지 않을까. 내가 덜 사랑받게 되고 말지 않을까. 딱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10.

레일 위를 잘 달리던 기차가 순간 덜컹거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이전에 시야가 뒤집혔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그리고 어둠이...

 

 

 

11.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집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앨에게, 한참을 울었던 것 같은 표정의 어머니가 더듬더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기차 사고가 일어났었다고. 또다시 너와 헤어지는 줄 알았다고. 손을 꾹 잡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리아에게 앨은 아무 얘기도 꺼내질 못했습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멍하니 입을 벌린 순간,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12.

머릿속에 모르는 장면이 지나갔습니다. '앨'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두 사람, 연인,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몰라야 할 기억들... 아, 마리아의 추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억이라고 어째선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 속의 두 사람은 정말로 즐거워보였고, 어머니는 행복했습니다. 그 벅찬 감정이, 자신의 것도 아닌 감정이 명확히 느껴졌습니다. 앨은 깨달았습니다. 이 감정은, 이 사랑은 너무나도 무겁다고.

 

 

 

13.

언젠가 들었던 친척의 말이 메아리처럼 스쳐 갔습니다.

 

"네가 눈앞에 있을 때만 마리아가 웃어. 종일 우울해 보이던 그 아이가, 정말로 행복한 것처럼..."

 

이제와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요? 조금 실망하고 말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그만둔다면 앨은 사랑받지 않는다, 그뿐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적어도 어머니와 앨 자신이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저 행복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앨은...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요. 동정이나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었어도 그는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이 불편한 감정을 조금만 참으면, 어머니는 계속 행복하실 텐데.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앨은 여행을 그만두겠다는 말도, 자신이 앨버트가 아니란 말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를 마주하는 게 더 불편해지기만 해서 여행을 전보다도 자주 떠나게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14.

이 연기를 그만두는 대신 앨은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날 마리아의 기억을 볼 수 있었던 '능력'에 대한 정체를 알고 나서 문득 생각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앨버트에 대해서 전혀 모를 사람들, 어머니와 달리 자신만을 봐 줄 사람들을 찾아가 무상으로 여행을 대신 다녀와 주기 시작했습니다. 눈의 능력을 통해 기억을 전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친척 동생, 그다음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어르신, 그다음에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무언가. 그만을 위한 감사. 마리아에게서 받던 감사와 미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그 '대리 여행'을 진행하는 동안은 잠깐이나마 '마리아만을 위한 여행을 하던 앨버트'와는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자신만의 무언가를 남기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5.

앨은 그렇게 앨버트의 흉내를 계속해나갔습니다. 대리 여행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으면 항상 친척의 그 말이, 행복하던 어머니의 기억이 떠올렸습니다. 하루만 더, 한 달만 더, 일 년만 더, 어머니가 건강해질 때까지만... ...그렇게 쭉 몇 년을 더 이어갔을까.

 

메일로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사랑해. 그것만은 나의 잘못이었지.

- 조혜은,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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